오피스 썰, 요즘 회사 메일 싸움은 AI가 대신한다? AI 대리전 현상
출근 후 메일함을 열었을 때, 거래처 담당자로부터 길고 정교하게 작성된 항의 메일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문장 하나하나에 신경 쓰며 반박 논리를 구상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겠지만, 요즘은 양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메일 본문을 그대로 복사해 AI에게 전달한 뒤 답장을 요청합니다.
"이 메일 내용에 대해 정중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답장을 작성해 줘."
단 몇 초 만에 완성도 높은 반박문이 생성되고, 곧바로 답장을 발송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으로부터 한층 더 세밀해진 논리의 답장이 도착합니다.
느낌이 딱 옵니다. '아, 저쪽도 AI 돌렸구나.'
1. 인간은 전달자일 뿐, AI와 AI의 유령 테니스
최근 기업 간 이메일 소통에서는 이처럼 사람과 사람이 직접 논쟁하는 대신, AI가 생성한 문장을 주고받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 A 담당자: AI를 통해 격식 있고 날카로운 메일 작성 후 발송
나. B 담당자: AI에 메일 본문을 입력하여 반박 문장 생성 후 회신
다. A 담당자: 해당 회신을 다시 AI에 입력하여 2차 반박문 작성 후 발송
결과적으로 담당자들은 AI가 생성해 준 매끄러운 문장을 복사하여 전달하는 역할만 수행하게 됩니다. 마치 사람이 공만 주워주는 'AI 대 AI의 유령 테니스 게임'이 펼쳐지는 셈입니다.
2. AI에게 방어 논리를 맡기면 결론이 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방식으로는 명확한 합의점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생성형 AI는 타협점을 찾는 기계라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에 맞춰 최선의 방어 논리를 만들어내는 기계에 가깝습니다. "방어적인 태도로 답해달라"는 지시가 들어가면, AI는 작은 꼬투리까지 잡아내며 무한에 가까운 방어 논리를 생성해 냅니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가. 본질의 상실: 단순한 일정 조정 문제였던 사안이, AI 간의 공방을 거치며 '업무 프로세스의 진정성과 양사 간의 신뢰 문제'처럼 본질과 떨어진 거대한 담론으로 번집니다.
나. 텍스트 인플레이션: 한 줄의 거절 의사로 끝날 내용이 몇 단락의 장문으로 부풀려지면서, 양쪽 모두 메시지를 깊이 읽지 않게 됩니다.
다. 피로도에 의한 종료: 논리적 합의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소모전을 견디지 못하고 직접 연락을 시도하거나 상급자가 개입해야 비로소 상황이 정리됩니다.
3. 비생산적인 핑퐁을 끊어내는 방법
AI 활용은 감정 노동을 줄여주고 초기 답장 작성 시간을 단축해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 없는 장문의 텍스트만 오가는 상황은 결과적으로 비즈니스 본연의 의사결정을 지연시킵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실행 규칙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가. 서두에 [핵심 요약 3줄] 명시하기
메일 서두에 핵심 안건과 요구사항만 요약하여 전달함으로써 본론에 집중하도록 유도합니다.
나. 메일 공방 2회 이상 반복 시 미팅 진행하기
AI가 작성한 장문의 메일이 두 번 이상 오갔다면, 추가 메일 작성 대신 짧은 전화 통화나 미팅으로 안건을 정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업무 효율을 위해 도입된 AI가 오히려 불필요한 텍스트 양산으로 시간을 소모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시점입니다.
오늘 메일함에 담긴 길고 정중한 메시지 속에서, 정작 나누어야 할 '진짜 대화'는 빠져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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