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물질의 바다 위에 서 있습니다. 70~80년대생인 부모 세대가 몽당연필에 볼펜 대를 끼워 쓰며 '물건의 수명'을 온몸으로 체감했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클릭 한 번'으로 내일 아침 현관 앞에 새 물건이 놓이는 '무한 복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극명한 차이는 물건을 대하는 태도를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1. [관계의 종말] '동반자'였던 물건이 '소모품'이 되기까지
과거의 물건은 주인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동반자'였습니다. 각도기 하나, 지우개 한 개에도 제 이름을 정성껏 적어 넣었고,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잃는 것과 같은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물건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데이터 조각'과 같습니다. 기능이 다하기 전에 질리거나 분실해도 즉각 보충되는 환경은 물건에 깃드는 '애착의 시간'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2. [결핍의 선물] 불편함이 길러낸 '창의성과 회복탄력성'
물자가 귀하던 시절, 우리는 부러진 연필심을 칼로 정교하게 깎으며 집중력을 배웠고, 구멍 난 양말을 보며 물자의 소중함을 익혔습니다. 결핍은 분명 불편함이었지만, 그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쓰고 물건을 고쳐 쓰는 과정에서 '창의성'과 '인내심'이 길러졌습니다. 반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비된 풍요 속에서는 무언가를 아끼고 관리해야 할 '동기' 자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물건을 험하게 다루는 것은 어쩌면 고쳐 써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껴본 적 없는 환경적 학습의 결과일지 모릅니다.
3. [가성비의 함정] 효율의 논리에 가려진 '노고의 가치'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논리도 큰 몫을 합니다. 고쳐 쓰는 수고나 비용보다 새로 사는 편이 더 저렴해진 시대에,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행위는 경제적 관점에서 가끔 '비효율'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효율 중심의 사고는 아이들에게 물건의 가치를 오직 '가격'으로만 판단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물건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누군가의 노고나 천연자원의 희소성을 바라보는 눈은 점점 흐려지게 됩니다.
4. 흔해진 물건, 가벼워진 마음: 대체 가능성이 앗아간 소중함
과거의 결핍은 물건에 '영혼(애착)'을 불어넣는 숙성의 시간이었으나, 현재의 풍요는 물건을 단순한 '기능적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아들이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것은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라기보다, 무엇이든 즉시 채워지는 환경이 만들어낸 세대적 특징입니다. 이는 '귀함'을 느낄 기회조차 박탈당한 풍요의 역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Fromm, E. (1976). To Have or to Be?. Harper & Row. (소유 중심 사회의 가치관 변화 분석)
Schwartz, B. (2004). The Paradox of Choice. Ecco. (풍요가 가져오는 선택의 과잉과 경박한 소비 문화)
Twenge, J. M. (2017). iGen. Atria Books. (디지털 풍요 세대의 물질관 및 사회적 특성 연구)